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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로또의 신이 내게 남긴 쪽지(로또 1184)

by LifeStory7 2025. 8. 9.

프롤로그: 운명이라는 이름의 장난

520만원.

이 숫자를 보며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해외여행? 새 차의 계약금? 아니면 한 남자의 20년 집착사에 대한 영수증?

나는 후자를 택했다.


1장: 시작은 언제나 달콤하다

2004년, 스물여섯의 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번 주는 다르다.' 편의점에서 로또 용지를 받아들며 느꼈던 그 떨림은 첫사랑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순수했고, 절망적이었다.

첫 구매 금액: 5,000원 첫 당첨 금액: 0원 첫 깨달음: "다음 주에는 분명히."

그렇게 나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됐다. 로또와의.


2장: 중독의 해부학

사람들은 묻는다. "20년이면 충분하지 않나?"

충분하다고? 베토벤이 9개의 교향곡을 완성하는 데 35년이 걸렸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다.

나는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20년을 바쳤다. 완벽한 패배를.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나는 종교인이 된다. MBC라는 성당에서, 추첨기라는 신의 음성을 기다리며 무릎 꿇고 앉는다.

"1번!"

심장이 멈춘다.

"나는 3번을 골랐는데."

심장이 다시 뛴다. 다음 주를 위해.


3장: 수학자의 고백

확률: 8,145,060분의 1 투자금: 5,200,000원 수익률: -96.9%

이 정도면 주식으로 치면 상장폐지감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워렌 버핏이 뭘 안다고? 그는 로또의 진짜 가치를 모른다.

로또는 돈을 버는 게 아니다. 가능성을 사는 것이다.

매주 5,000원으로 나는 억만장자가 된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4장: 승리의 순간들

20년간의 전적을 공개한다.

5등: 2회 (5,000원 × 2 = 10,000원) 4등: 3회 (50,000원 × 3 = 150,000원) 3등 이상: 0회

총 수익: 160,000원 ROI: -96.9%

하지만 이 숫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게 있다. 4등에 당첨됐을 때 느꼈던 그 전율, 마치 우주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한 그 순간을. "아직 포기하지 마라.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다."


5장: 철학자의 시간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행복은 활동이다."

나의 행복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활동한다. 8시 정각, TV 앞에 앉아 운명과 마주하는 그 순간. 814만분의 1이라는 확률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사람들은 이를 어리석음이라 부른다. 나는 이를 믿음이라 부른다.


6장: 반전, 혹은 깨달음

그런데 말이다.

지난주 일이었다. 평소처럼 번호를 선택하려는데 갑자기 깨달았다. 나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번호를 연속으로 산 적이 없다는 것을.

매번 다른 번호. 매번 새로운 희망. 매번 다른 방식의 절망.

만약 내가 20년 전 그 첫 번호를 계속 샀다면? 만약 그 운명의 숫자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는 로또에 중독된 게 아니라, 변화에 중독됐던 것이다. 매주 다른 꿈을 꾸는 것에.


에필로그: 미완성 교향곡

오늘도 나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또 다른 5,000원을 들고. 또 다른 꿈을 사러.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언제까지 할 건가?"

나는 답한다. "첫 번째 숫자가 나올 때까지."

그 첫 번째 숫자는 당첨번호가 아니다. 포기라는 단어다.

하지만 20년째, 그 숫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생은 확률게임이 아니다. 의지게임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 어느 로또 20년차의 고백 -


P.S. 혹시 이 글을 읽은 후 당첨되신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20년간 쌓아온 나의 업보가 당신에게 흘러간 것입니다. 축하와 함께, 작은 나눔 부탁드립니다. 😅